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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이야기.../대구광역시

[대구광역시-달성구]남평문씨 본리세거지를 가다.

by 산수유. 2007. 7. 23.

 

 

 

 

 남평문씨 본리세거지

 

대구시 달성군 화원 본리리 401-2

 

 

 

 문익점의 18대손 문경호가 터를 닦았고, 남평 문씨 일족이 모여 살던 곳이란다. 특별한 뜻이 있어 간 곳은 아니 였다.

대구수목원을 가던 중 들렀던 곳인데 "이런 곳도 있었구나" 했었다. 이 곳은 원래 절이 있던 명당터를 구획하여 집터와 도로를

반듯하게 정리하고 집을 지었단다. 지금은 조선 후기의 전통가옥 9채와 정자 2채가 남아 있으며,

도로에 접한 부분에는 나지막한 담을 쌓았다.  사람들이 쉬고 있는 곳은 '수봉정사'로  현판은 추사체이다.

 

지붕위로 보이는 커다란 나무는 문경호나무라 하며  300년이나 되었다고 한다. 나무가 사람의 이름을 그대로 사용한다는 것이...

 

  능소화가 담위로 늘어져 피었다. 마치 전설을 이야기 하듯.. 양반들만 심는 꽃이라 옛날에는 평민들이 능소화를 심다가  걸리면 잡혀가서

양반 능멸죄로 았다나--;;;  능소화는 독이 없고,  꽃가루는 갈고리가 있어 눈에 들어가면 실명 할수도 있다하니 조심해야겠네요.

  

 남평문씨가 대구에 입향한 것은 대체로 500여년전으로 추정된다고 합니다. 이곳 인흥에 터를 잡은것은  문익점의 18세손인

인산재(仁山齋) 문경호(1812∼1874) 때이며 이곳 세거지는 건축연대가 200년미만이나  전통적인 영남지방의 양반가옥의 틀을 지키고 있으며

늘날도시계획처럼 도로망이 정비되어 있는 등주위의 환경과 조화를 이루도록 마을을 구성한 예 또한 희소하여 큰의의를 갖고 있다.

1975년 경상북도 민속자료 제 3호로 지정되었는데 대구로 입되면서 대구 민속자료제 3호로 재지정되었단다.(한국관광공사)

 

  '광거당'으로 평소 닫혀있다.  안으로 들어가려면 안내소에 이야기하면 된다.

 

새삼 한옥의 매력에 빠져드는 순간이다.  왠지 마음의 채워짐이 있다. 한옥의 익숙함 그리고 그리움,,,

 

 

  

 이곳의 특징이 대문등 손잡이에 거북이 조각을 했다는 것인데...장수를 빌어서일까.

 

  텃밭의 석탑을 통해 절터의 흔적을 발견 할 수 있다.

 

 

 

어릴쩍, 아버지는 가끔"셋째야~" 하고  부르실 때가 있다. 나는 아버지의 목소리를 들으면

지붕을 올라 가야된다는 것을 직감 할 수 있었다. "조심해야 한다"하시며 사다리 위로 나를 올려 놓으시면

나는 참새들이 집을 지으려고 풀가지등을  물어 다 놓은 것을 집게로 집어 내었었다. 어떤때는 제법 많이 지어 놓기도 했지만..

아버지의 손이 닿을 수 없는 곳은 그렇게 몸이 제일 가볍다는 이유로 나를 지붕위로 올려보내 기와장을 누비며(? )

참새와의 전쟁을 하게 했었던.., 먼 발치서 기와지붕을 보니 그때 기억이 떠 올라 웃음이 나온다.

 

 

화원읍 소재지에서 현풍방면으로 5번 국도 → 화원 삼거리를 지나 화원교 바로 전 좌측 마을입구에서 2.7km

화원읍 소재지에서 버스 650번으로 약 5분(수시 운행), 도보로 약 15분

화원읍 소재지에서 버스 836번으로 약 10분(하루 10회 운행)