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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이야기.../경상북도

[경북-안동]서원의 향취를 뜸뿍 느낄 수 있는 병산서원

by 산수유. 2009. 12. 3.

병산서원

 경상북도 안동시 풍천면 병산리 30번지 054-853-2172

 

 병산서원은 조선시대의 대표적인 유교적 건축물로 류성룡과 그의 셋째아들 류진을 배향한 서원이다.

본래 풍악서당이라하여 풍산읍에 위치했으나,  서애 류성룡선생(1542~1607)이 선조5년(1572년)에 후악 양성을 위해 이곳으로 옮겨왔다.

빼어난 자연경관이 병풍을 둘러친 듯하여 '병산'이라 불리기 시작하였고, 뒤로는 화산을 등지고 있으며,

앞으로는  낙동강이 백사장과 함께 굽이쳐 흐른다. 병산서원은 풍수지리적 위치로 볼 때,  재물이 쌓일 틈이 없어

살림집의 입지로는 부적합하지만, 교육시설로는 적합한 터가 되므로 학문수양에 알맞는 곳으로 서원의 터로는 안성맞춤이란다.

 

병산서원을 찾았을 때 비가 추적추적 끈질기게도 내린다.

 다니기에 불편함은 있어도 만대루에 올라 비가 내리는 낙동강을 바라보니 운치가 그만이다.

 

서원의 정문으로 '내가 이곳에 들어가기전 예를 지킨다' 는 뜻을 지닌 '례문'

 

 

 복례문을 지나면 만대루 아래로 입교당이 보인다. 마음을 경건히 하라는 뜻인지 고개를 숙여야 지나 갈 수 있도록 했다.

 

  

 

 입교당으로  제자가 스승의 가르침을 받는 강학당(講學堂), 한마디로 수업을 받던 '교실' 이다.

 "가르침을 바로 세운다" 라는 뜻의 입교당은 서원의 중앙에 위치하고, 병산서원의 중심역할을 하는 곳이며,

     입교당 중앙은 강학당, 동쪽으로 명성제 서쪽으로 경의제 로 모두 세칸으로  나누어져 있다.

     

 

입교당 맞은편에 위치한 만대루는 유생들이 행사 때 한자리에 모였던 대강당으로 병산서원에서 가장 알려진 건물이다.

건축과 조형미에서  그 가치를 인정받는 건물이기도 하며,  7칸의 단순한 건물인 만대루는 

병산서원의 집합적 질서의 묘미가 집약되어져 있다고 말한다. 만대루의 기둥들은 그 다양한 선의 연속에 의해

주변경관을 수직적으로 분절시키고 있고, 기둥과 기둥사이로 다가오는 풍경은 모두 제 각각의 그림이 되어 보여지고 있었다.

또한 만대루의 '만대'는 두보의 시[백제성루]에 나오는  "푸른절벽은 오후늦게 대할 만하니"에서  따온말이란다. 

그래서 일까!!! 병산서원을 찾았을 때 방문시간이 늦어 들어 갈 수없다면  만대루에 올라 두보의 시를 한 수  읊는다면

" 매일 언제든 오라"는 말을 이곳 지킴이 주사님으로 부터 들을 수도 있다는 귀뜸을, 함께한 이웃님이 농담삼아 슬쩍 흘린다.

 

 

 

서재 

 

유생들의 기숙사 역할을 한 동재와 서재가 입교당과 만대루 사이의 마당 양옆으로 위치해 있다. 

 

동재 

 

 

 

세개의문과 담으로 구분한  존덕사는 입교당 뒤쪽으로 위치해 있다. 매년4월과 10월 향사때만 열린단다.

 

 

 

 

동재 뒤쪽으로 위치해 있는 주사로, 병산서원을 관리 하시는 지킴이님이 거주하신다.

대문을 들어서자 곶감이 처마밑에 매달려 시선을 끈다. "저 곶감 맛있게 생겼다"고 하니 주사님 언제 나오셔서 들으시곤

"맛있게 생겼으면 먹으면 되지요"하고 곶감에 손을 뻗는 순간 함께한 일행들 여러명이 들이닥치자

"사람이 많이 오네"하시며 어디로 사라지시고 안보이신다. ^^;

 

주사 앞마당에 있는 달팽이 모양의 뒷간(화장실), 비가오면 어찌 해결했는지 지붕이 없다. 이 머슴뒷간을 '통시'라고 불렀다고...

    

  

 

찾아가는 길 

병산서원은 하회마을에서 낙동강 상류방향으로 도로를 따라가면 약 6km지점에 위치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