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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이야기.../인천광역시

우리나라 최초시리즈 인천을 말한다.

by 산수유. 2010. 5. 6.

   

 홍예문을 지나 문화의 거리가 있는 신포시장쪽으로 걷는 듯했다. 고향을 떠난지 오래되어 방향 감각도 잃어버린..

인천은 외세의 강압에 의해 개방을 했지만, 그것이 강압이라 하더라도  빨리 개방한 만큼 일본이나 미국, 청국 그리고 프랑스나 독일등

세계 여러나라의 문화와 문물이 들어오면서 빨리 깨우치는 젊은 도시가 되었던 인천이다.

 

사람들은 최초의 극장이 서울의 원각사로 알고있고, 커피는 서울 정동에 있던 손탁호텔에서 처음 마신것으로 알고 있다, 그 뿐아니라

야구도 서울의YMCA에서 처음 시작된것으로 알지만 축구와 야구가 서양에 의해 처음전해진 곳이 인천이고,

 최초의 극장인 협률사도 인천에 있었다. 그리고 성냥이나 비누, 고무신, 사이다, 자장면, 쫄면이 이곳 인천을 거쳐 서울로 들어갔단다

또한 우리나라 최초의 교회와 최초의 여학교, 최초의 호텔도 인천에 있었고, 최초의 열차인 경인선이 있는가 하면

최초의 고속도로도 인천에서 시작되었다.  그러기에 역사적으로 볼 때도 우리나라 최초, 최고의 기록이 많은 도시가 된 인천이다.

 

물론 얻는것이 있으면 잃는것도 있게 마련인데 그 당시 신흥도시 인천으로 일자리를 찾아 몰려드는 사람들로 인해 주거환경도 급격히

나빠졌을 뿐 아니라 식수 문제도 심각했었단다. 이런저런 역사적인 기록을 보고 있자니 그런면에서는 힘든 세월을 보낸 인천인듯 싶다.

어찌되었는 홍예문에서 인성여고를  지나 문화의 거리가 있는 쪽으로 내려가는데 병뚜껑을 벽에 붙인 카페가 보였다.

 

  

  

 

한마디로 병뚜껑의 오묘한 변신? 이다. 언젠가 보길도에 가서 그 지역 특산물인 전복 껍데기를 벽에 붙인 공방을 본적은 있어도

병뚜껑을 이용한 곳을 본건 처음인 듯 하다. 보통 이런 인테리어는 일본인들이 정교하고 폐품활용을 잘 하는 편인데...

이 거리가  일본인들이 살았던 지역이라고는 하지만 누구의 솜씨인지 그 정교함에 대단하다는 생각이 든다.

 

 

 

추억을 더듬으며  인천의 명물로 새롭게 태어날 거리를 걸었다. 

역사와 문화가 살아있는 관광코스로 발전시킬 계획을 가지고있다는 거리에는 오래전 일본은행 건물들이 철문이 굳게 닫힌채 있었다.

그 당시 개항장에 세워진 일본은행은 한국인의 경제활동을 돕는것이 아니라 우리나라에서 활동하는 일본상인들을 지원하여 산업자본과

고리대자본을 육성하고 토지구입자금을 공급하여 일본의 경제적 침략을 돕는데 목적이 있었다고 한다. 이런 일본 은행건물과

근대식 건물들이 그 당시 인천의 경제적 상황을 보여주듯 쉽게 찾아 볼 수 있었는데 일부 건물은 공연장이나 전시회장으로 활용하고 있었다.

이곳 건물들은 박물관이나 기타 문화의 거리에 맞는 용도로 사용할수 있게 리모델링 할 계획이란다.

 

  

이 주변으로 만석부두가 있는데 만석부두는 60년대 초까지 영종도를 왕복하는 정기선이 떠나던  자리였단다. 또한 이일대는 달동네이면서

어촌마을의 생활상을 그린 <괭이부리말 아이들> 이라는 소설의 무대로 잘 알려진 곳이란다. 전혀 몰랐던...

 

 

이 계단을 따라 올라가면 우리나라 최초의 서구식 공원인 자유공원이 나온다.

인천 자유공원은 1888년 탑골공원보다 9년 일찍 응봉산 일대에 조성되어 오랫동안 인천시민의 휴식처가 되고있다.

 

 

그리고 우리나라 최초의 호텔인 대불호텔이 이곳에 있었는데 1889년 세워진 대불호텔은 그 당시 수도 서울로 들어가는 길에

하룻밤 머물기 위한 외국인들의 숙박 장소로 세워졌고 처음으로 이곳에서 커피도 판매하였다고 전해져 역사적으로나 문화적으로

중요한 의미를 갖는 곳이다.

 

 

더불어 말하자면

우리나라 최초로 세워진 공연장은 1885년에 세워진 인천에 협률사란다. 좀 안다는 사람들은 원각사가 원래 협률사고 1902년 지금의 

새문안 교회자리에 있는 황실건물에 처음 만들어 졌다가 문을 닫고 몇년뒤 다시 그 자리에 원각사를 세웠다고 주장 한다고 한다.

그렇지만 우리나라 최초로 세워진 공연장은 '인천의 협률사'고 두 공연장에 붙은 '사'자의 한자가 다르지만 인천의 협률사가 서울것보다 

7년을 앞서 개관했고, 원각사보다는 14년 앞서 개관한 사설공연장이란다. 또한 서울의 원각사나 협률사가 '관'에서 주도한 공연장이였다면

인천의 협률사는 개인이 설립한 '사설공연장'이라는 점이 다르다고 한다.   

 

그리고

우리나라 최초로 야구와 축구가 시작된 곳은 인천의 웃터골 운동장이란다. 웃터골은 지금의 제물포 고등학교 자리인데

그리스의 고대극장이나 로마의 원형경기장처럼 위에서 내려다보는 형태의 운동장으로서, 인천체육의 중심지로 야구와 축구경기가 많이

펼쳐졌지만 1920년부터 웃터골 경기장의 함성은 1934년 인천공립중학교가 들어서면서 사라지게 되었단다.

 

인천으로 하였느냐 "모든 길 인천으로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