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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이야기.../강원도

[강원도-화천] 자연이 빚어내는 흰백색의 풍경이 아름다운 화천

by 산수유. 2009. 12. 11.

산촌의겨울, 그곳을 향해...

자연이 빚어내는 흰백색의 풍경이 아름다운 화천 

 

내 시선에 들어온 흰백색의 풍경이 아름다웠던 화천자연이 빚어낸 아름다움이 오염되지 않아,  

한층 더 아름다울 수 있는 화천이 아닐까 생각된다. 80%로 이상이 임야지대인 강원도이기에

발길 닿는 곳마다 그림으로 다가오는 자연경관은 먼길을 달려간 내게 실망을 안기지않았다.

이틀동안 투어일정에 우리를 싣어날을 버스에 올라  어느정도 달려갔을 쯤,

차창밖으로 흩날리는 눈발에 나는 이미 거리에 대한 피곤함을 잊고 있었는지도 모른다.

 

 

우리 일행을 태우고 화천강변을 따라 달리던 버스는 꺼먹다리에서 정차를 한다.

차에서 내리니 겨울바람이 기세등등하지만, 하얀융단을 깔고 손님을 맞이하는 듯한 꺼먹다리의 유혹에

다리위를 잠시 걸어보았다.  발자국을 남기는것이 미안할 정도로 그야말로 순백색의 눈이다.

 

 

 꺼먹다리

강원도 화천군 화천읍 대이리 468-3

 ☎ 033-440-2543(화천군청)

 

 

 이 꺼먹다리는 일제가 기초를 놓고  한국전쟁이 일어나자,  소련군이 들어와 교각을 놓았으며 

 휴전이 된 후에  화천군이 상판을 놓아 다리를 완성했다.  교량 상판이 검은색 콜타르 목재이므로 꺼먹다리로 부른다.

 

꺼먹다리는 1945년경 화천댐과 발전소가 준공되면서 세운 폭 4.8m, 길이 204m의 철골과 콘크리트로  축조된 국내최고의 교량이다.

교량구조는 콘크리트 주각위에 형강을 세우고 그 위에 콜타르먹인 목재를 대각선으로 설치하는 공법으로 목재부식을 최소화 하였고,

단순하면서도 구조적으로 안정감을 주는 공법을 사용한 현대 교량사 연구에 아주 귀중한 자료이다. (화천군)

한국전쟁 당시 주요시설 확보를 위한 최대 거점 격전지였던 파로호와 화천 댐 그리고  지금은 DMZ로 변한 백암산을

연결하는 유일한 교량이였던 꺼먹다리는 그 당시 콘크리트와 철근 등으로 만든 다리가 주변지역에는 없어 주민들의

구경거리가 될 정도로 유명했단다. 또한  북한강과 더불어 주변 경관이 뛰어나 영화촬영지로도 각광을 받는 곳이라고 한다. 

 현재 등록문화제 제101호로 지정된 이 꺼먹다리는 근세의 아픈역사와 함께한 다리라 하겠다.

 

 

 

  

 

 

 

그렇게 꺼먹다리에서 잠시 시간을 보내고,  화천강변을 따라 계속 달리던 차는 딴산이란 곳에 멈추었다.

화천군은 이곳을 표현하기를 산이라기 보다 섬같이 물가에 떠 있는 조그만 동산 같단다.

 

 

 딴산과  전설속의 처녀고개

 

강원 화천군 화천읍 대이리1-1(딴산)

강원 화천군 화천읍 풍산리(처녀고개)

☎033-440-2543(화천군청 관광정책과)

 

화천읍에서 약 9km 떨어진 딴산은 파로호와 평화의댐 진입로에 위치해 있다. 이미 겨울풍경을 만들어 내고 있는 딴산은  

여름이면 산 그늘과 강물이 시원한 쉼터로서의 역할을 해주는 곳으로 관광객이 즐겨찾는 명소가 되었단다.

딴산은 그 옛날 금강산 일만이천봉을 채우기 위해 금강산으로 이동하던 중에 이미 일만이천봉이 다 완성 되어

그 자리에 눌러 앉았는데 그곳이 이곳 이라는 것, 해서  홀로 딴 산이 되었다는... 

 

 

 

딴산앞 마을 풍경, 이 주변을 딴산유원지라고도 부른다.

 

 

 

  

 

그리고 딴산유원지에서 도로를 따라 조금만 가면 소나무 덮인 조그만 바위산인 전설속의 처녀고개가 있다.

 

 

 

화천 처녀고개 전설내용은 같은마을에 사는 도령과 장래를 약속한 처녀가 있었는데 도령은 처녀에게 기다려 줄 것을 약속하고

과거를 보러 떠났다. 그 후부터 처녀는 날이 저물면 도련님이 넘어 간 고갯마루에 올라  도련님이 올 날만 기다렸다.

도령이 한양으로 떠난 그 다음해 봄부터  처녀는 자기 키와 같은 소나무를 골라 도령의 버선목을 매달아 놓았다.

이렇게 기다리기를 십년. 어느날 처녀는 더러워지고 빛바랜 낡은 도령의 꽃 버선을 새로 만들어 소나무에 매달려고

나무에 올라갔다가  그만 떨어지는 바람에 절벽으로 굴러 죽고 말았다. 처녀가 죽던 날 도령은 장원급제하여 돌아왔으나 

처녀가 죽었다는 마을사람들의 말을 듣고는 자기를 기다리다가  죽어간 처녀를위해 벼슬을 버리기로 결심하고 

처녀의 무덤옆에 초가를 짓고 농사를 지으며 살았는데 해마다 풍년이 들었단다. 그래서 마을 사람들은 이 동네이름을 '풍산리'라  짓고,

 처녀의 명복을 빌기 위해 그녀가 버선목을 매달았던 소나무를 성황으로 모시고 이 고개를 ‘처녀고개’라고 지었다고 한다. 

 

전설속의 처녀고개 풍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