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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이야기.../경상북도

봉화 서동리 삼층석탑

by 산수유. 2008. 10. 8.

봉화 서동리삼층석탑

 

보물 제52호인 서동리 삼층석탑은 동탑과 서탑으로 이루어진 쌍탑형이다.

이곳은 원래 '람화사'라는 사찰의 터였는데 원효대사가 지금의 각화사를 창건하면서 람화사를 폐하엿다고

전해 진다. 주인을 잃어버린 석탑 두 개는 10여 미터의 거리를 두고 나란히 서 있는데 탑 앞에 남겨진

석불 1구만이 옛  절터의 마지막 기억을 희미하게 회상하고  있다.

 

 

머리는 누군가 새로 만들어 붙였는지 변색정도가 몸체와 다르다.

 

1963년 이들 두 탑은 해체수리가 이뤄졌다. 그 결과 동쪽 석탑 첫 번째 탑신석(탑 몸통) 위쪽에 마련된 사리공(사리구를 넣기 위한 구멍)이 발견되고, 그 안에서는 99기에 이르는 소탑(小塔)을 비롯해 곱돌로 만든 사리호와 사리 3립(粒)이 든 녹색 유리 사리병이 나왔다. 이처럼 미니어처화한 작은 탑을 만들어 실제 탑에 봉안하는 일은 '무구정광대다라니경'(無垢淨光大陀羅尼經)이라는 불경에서 비롯된다. 이 경전에서는 다라니를 넣은 작은 불탑을 만들어 탑 안에 넣고 주문을 외우면 무수히 많은 사리탑을 만드는 효과를 가져와, 중생들은 수명을 연장하고 모든 병이 사라져 재앙이 소멸한다고 말하기 때문이다. 서동리 삼층석탑 사리구는 8-9세기 신라 불교계 석탑에 집중적으로 안치된 성보(聖寶) 유물 중에서도 보존상태가 매우 양호하고, 소탑 99점이?온전하다는?점에서 미술사적 가치가 높다고 평가된다. 그리 두껍지 않은 지붕돌은 밑면에 4단씩의 받침을 두었으며, 네 귀퉁이에서 살짝 들려 있다. 꼭대기의 머리장식은 서쪽 탑에만 네모난 노반(露盤:머리장식받침)이 남아있을 뿐이며, 동쪽 탑은 모두 없어졌다. 기단부가 땅속에 파묻혀 있고 탑이 몹시 기울어져 있어 1962년 10월에 해체, 복원하였는데, 이 때 서탑에서는 사리함을 넣었던 공간이 발견되었고 동탑에서는 사리병과 함께 99개의 작은 토탑(土塔)이 발견되었다. 전체적으로 아름다운 비례와 정제된 조형미를 보여주는 작품으로, 통일신라 후기에 만들어진 것으로 추정된다.(전통사찰관광정보)    

 

 

춘양면 의양리에 위치한 기상관측소 

 

  

  

 

경북 봉화군 춘양면 서동리 춘양중학

서동리 삼층석탑은 이 춘양중학교정  동서쪽에 각각 자리를 잡고  있다. 

 

 

권진사댁에서 아침 식사를 한 후,  잠깐의 시간적 여유가 있어,  서동리삼층석 탑으로  산책을 다녀왔다.

진행팀의 안내로 일행을 따라 쌍탑으로(이렇게도 부른다.) 향하는데, 전형적인 시골 마을 풍경이 편히  다가온다.  

숙소였던 권진사댁에서 삼층석탑으로 가다보면,  마을 오른쪽에는 실개천이 흐르고 그 왼쪽으로 춘양면 기상관측소가  있었다. 마을 사람들의 잔잔한 일상이 시작되려는지 마을 어르신들 서너분이  구멍가게  앞에 나와 계시는게 보였다.   마을 앞 실개천을 끼고 아름드리 나무가 서 있다. 올 여름 큰 수해를 입은 춘양리...,  이곳도 예외는 아니였지 싶은데,  그 난리에도 저 자리를 묵묵히 버티고 있었던  모양이다.  권진사댁에서 약5분?정도 걷다보면 마을과 마을을 잇는 다리가 나온다. 그 다리를 건너 느릿한 걸음으로 약3분?정도 걷는  거리에  춘양면 서동리 중학교가 보인다.  짐작하건데  실개천을 중심으로 행정적인 지명이 의양리와 서동리로 나뉘어 지는 듯하다. 서동리중학교정문을 지나자마자 오른 쪽으로 시선을 돌리면. 조용한 시골의 호젓한 곳..,  흙냄새 풀냄새가 폴폴 올라오는 그 곳에 지나간 세월의 깊은 여운을 남기며, 서동리 삼층석탑이  세워져있다.

 

 

승용차

1)영주-36번 국도-봉화읍-봉화군청-구애정-법전면사무소-88번 군도-춘양면사무소-서동리 삼층석탑

2)울진-36번국도-소천면사무소-좌회전-법전면-88번 군도-춘양면사무소-서동리 삼층석탑

 

봉화군청 http://www.bonghwa.go.kr/

문화재청  http://www.cha.go.kr/

  

봉화서동리삼층석탑 - 한국관광공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