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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이야기.../경상북도

[경북-경주]천년의 세월 동안도 순백의 빛깔 그대로.., 나원리오층석탑

by 산수유. 2009. 6. 18.

 

이끼가 끼지않아  '원백탑'이라고도 불리는 '나원리 오층석탑'

나원리마을의 절터에 남아 있는 석탑으로, 경주에 있는 석탑 가운데 감은사지삼층석탑(국보 제112호)과  

고선사지삼층석탑(국보 제38호)과 비교되는 거대한 규모를 자랑한다.

 

천년의 세월이 흐른 지금까지도 순백의 빛깔을 간직하고 있는데, 이로 인해 ‘나원 백탑(白塔)’이라 부르기도 한다.


2층 기단(基壇)에 5층의 탑신(塔身)을 세운 모습으로, 기단과 1층 탑신의 몸돌, 1·2층의 지붕돌을 제외한 나머지가 모두 하나의 돌로 이루어져 있다.

기단은 각 면마다 가운데와 모서리에 기둥 모양의 조각을 새겼는데, 가운데부분의 조각을 아래층은 3개씩, 위층은 2개씩 두었다.

탑신부는 각 층 몸돌의 모서리에 기둥 모양의 조각이 새겨져 있다.

지붕돌은 경사면의 네 모서리가 예리하고 네 귀퉁이에서 살짝 들려있어 경쾌함을 실었고, 밑면에는 5단씩의 받침을 두었다.

꼭대기에는 부서진 노반(露盤:머리장식 받침)과 잘려나간 찰주(擦柱:머리장식의 무게중심을 지탱하는 쇠꼬챙이)가 남아있다.

짜임새있는 구조와 아름다운 비례를 보여주고 있어 통일신라시대인 8세기경에 세웠을 것으로 추정된다.

경주 부근에서는 보기 드문 5층석탑으로, 탑이 지니고 있는 듬직한 위엄이 있다.(문화재 정보)

 

 

 

 

 

 

 

 

차 한대 겨우 지나갈 정도의  다듬어지지 않은 길을 따라 찾아간 나원리 오층석탑

석탑의 규모로 보아 제법 큰 절이였을 거라는 이웃님 말에 어디쯤 대웅전이 있었을까 상상을 해 보지만...

들판을 마주하고 우뚝 서 있는 탑은 정갈한 모습과 듬직함이 함께 공존 했다.

화강암석질로 인해 오랜 세월 동안 이끼도 끼지않아 돌에서 느끼는 순백색의 미는 보드라운 여인의 살결을 보는듯하기도 하고

통일 신라초기의 석조미술의 특징이 그렇듯 절도있는 직선의 짜임새는 듬직함이 묻어있다.

 

나원리 오층석탑은 오랜세월동안 순백의 빛깔을 그대로 지니고 있다하여 신라팔괴로 알려졌다.

신라 팔괴는

- 반월성 남쪽을 흐르는 문천(蚊川)의 모래가 물이 흘러가는 방향과는 반대로 거슬러 올라간다는 문천도사(蚊川倒沙)
- 안압지에서 자라는 마름은 뿌리가 땅에 닿지 않고 수중에 떠서 자란다는  안압부평(雁鴨浮萍)
- 이차돈 순교와 관련 백률사의 소나무순을 가리킨다는 백률송순(栢栗松筍)
- 임금이 놀던 형산강변의 금장대에는 경주를 지나가는 기러기떼가 반드시 이곳에 머물러 쉬었다가 간다는 금장락안(金丈落雁)

- 아사녀와 아사달의 전설이 어린 영지인  불국영지(佛國影池)
- 해뜨기 전 선도산의 아름다움을 가리키는 것이다는 선도효색(仙桃曉色)
- 남산의 저녁놀이 아름답다는 금오만하(金鰲晩霞) 
- 계림에는 한여름에도 잎사귀가 누래진다는 계림황엽(鷄林黃葉)
- 국사골 바위를 말하는 남산부석(南山浮石)
그리고 통일초기의 탑이지만 아직도 순백의 빛깔을 간직하고 있는 나원백탑(羅原白塔)이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