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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이야기.../경상남도

[밀양] 백매[白梅]를 보기위해 다시 찾은 표충사

by 산수유. 2010. 3. 31.

 백매[白梅]를 보기위해 다시찾은 표충사

 

3월 초 매화를 찾아 먼길을 달려온 이웃님을 안내한다는 핑계로 표충사 경내에 있는 매화를 보기위해 갔었다.

말이 안내지..,  나 역시 한동안 가보지 못한 표충사 풍경이 궁금했었기에 따라 붙었다고 해야..^^

그렇게 따라 나선 길에서 봄 날씨 답지않게 내리는 눈으로 인해 진풍경을 만나기도 했었다.

내심 피어나기 시작하는 꽃들이 걱정도 되지만, 이곳 지역에선 보기힘든 눈이기에 저절로 감정이 앞서 "와.. 눈이다."하며

나도 모르게 탄성을 지르는 내게, 이미 눈이 많이오는 지역에서 봄 마중을 온 이웃님은 하얀색만 보아도 무섭다며...

더군다나 겨울내 눈만치다 겨울을 다 보낸듯한데 어찌 3월에 이곳까지 와서 내리는 눈을 봐야하냐고 연신 투덜거리듯

말을 하는 이웃님이 귀엽기까지한..ㅋ 어찌되었든 그렇게 도착한 표충사에서 매화를 보니

내 감정에만 몰두해 있을 때가 아닌듯한 상황이다. 나야 마음만 먹으면 그나마 달려올 수 있는 거리라지만, 

그 먼길을 오직 매화만이 목적이 있어 달려 온 이웃님에겐 내가 미안하리 만큼 매화는 봉오리만 물고 있었던...

경내를 한바퀴 돌고나서 아쉬운 마음에 매화나무를 바라보며 섯자니 남의 마음은 아랑곳 않고 여전히 고즈넉한 풍경으로 다가옴이 좋더라는...

마치 오래된 과거로의 여행을 떠나온 느낌이였다. 그렇게 아쉬운 마음으로 지켜 보았던 그 매화가 궁금해 지난 주 다시찾은 표충사다.

 

표충사로 진입하는 길은 늘 마음을 편안하게 해 준다. 노송이 보여주는 풍경에 자동적으로 올라가 있던 자동차 속도계가 떨어지는..^^;

 

밀양시 단장면에 위치한 표충사는 재약산 자락의 한 품에 안겨있다. 주차를 하고 수충루를 지나 계단을 따라 오르면 사천왕문이 있다.

사천왕문을 지나면 바로 왼쪽에 종무소가 있는데 그 앞으로 수령160년이 넘었다는 매화나무가 다소곳이 서있다.

 

 

 

 

 

나무에 눈이 내린듯 매화가 피었다. 여러그루를 보는 것과는 또 다른 아름다움이...

 

 

무엇을 알고 저리 쳐다보고 섰는건지...

 

 

 

  삼층석탑(통일신라 / 보물 제467호,높이 770㎝.)과 석등(경상남도지정 유형문화재 14호)

 

   우화루

 대광전을 바라보며 마주하여 자리잡은 우화루는 정면 7칸, 측면 2칸의 맞배지붕 건물이다. 

  원래 중심법당인 대광전으로 들어서는 중문으로 최근까지 우화루 앞으로 진입로가 있었으나, 근래에 가람을 정비하면서 진입로가 바뀌었다.
  우화루는 야외참선 장소로 쓰인 곳이며, 우화루에 올라서 내려다보면 남계천 맑은 물이 발아래 깔린다.

 

 대광전(경상남도 유형문화재 제131호)

 대광전은 표충사의 큰 법당이다.  법당이란 진리로써 가득 채워져 있는 집이라는 뜻이다.

표충사의 대광전은 신라시대에 창건하였다고 하나, 화재나 병화(兵火)로 소실되어 중건, 중수 되었다.
 현재의 전각은 조선후기에 중건한 정면 5칸, 측면 3칸, 외3포, 내3포의 다포식 팔작지붕이며, 경상남도 유형문화재 제 131호로 지정되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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표충사 3월초 풍경(▲)

 

표충사에 대한 자세한 사항은 표충사 홈페이지에 들어가면 알수 있어요. 여기 표충사   

경남 밀양시 단장면 구천리 31-2 055) 352-1070

 

대한불교조계종 제15교구 본사인 통도사의 말사이다. 사기(寺記)에 의하면 654년(무열왕 1) 원효대사가 창건하고 죽림사(竹林寺)라 했으며, 829년(흥덕왕 4) 인도의 고승인 황면(黃面)선사가 석가모니의 진신사리를 봉안할 곳을 동방에서 찾다가 황록산 남쪽에 오색서운이 감도는 것을 발견하고는 3층석탑을 세워 사리를 봉안하고 절을 중창했다고 한다. 이때 흥덕왕의 아들이 나병에 걸려 전국의 약수를 찾아 헤매다가 이곳의 약수를 마시고 황면선사의 법력으로 쾌유하자 왕이 기뻐하고 대가람을 이룩한 다음 절 이름은 영정사(靈井寺), 산 이름은 재약산으로 바꾸었다. 고려 문종대(1047~82)에는 당대의 고승인 혜린(惠燐)이 이곳에서 수도했고, 충렬왕대(1275~1308)에는 〈삼국유사〉의 저자인 일연이 주석하면서 불법을 크게 중흥하니 1286년 충렬왕이 '동방제일선찰'이라는 편액을 내렸다. 1839년(헌종 5) 사명대사의 법손(法孫)인 월파(月坡)선사가 임진왜란 때 공을 세운 사명대사의 충혼을 기리기 위해 고향인 밀양시 무안면에 세운 표충사(表忠祠)로 옮기면서 가람배치가 크게 변하고 절 이름도 표충사로 바뀌었다. 1926년 응진전을 제외한 모든 건물이 화재로 소실된 것을 재건하여 오늘에 이르고 있다. (출처:표충사홈페이지)

 

전각둘러보기(▼)  

 

 (내용은 표충사 홈페이지에 들어가면 볼 수 있답니다. ) *표충사 - 표충사소개 - 전각둘러보기

 

사천왕문을 통해 수충루(표충사의 정문)가 보인다. 

 

 일주문은 솔숲 길을 어느 정도 걸어나가야 있다.

 

표충사는 사명대사, 서산대사, 기허대사등 3대 선사의 영정을 봉안한 표충서원이 있으며

1177년에 제작되어 남아있는 가장 오래된 고려향로인 '표충사 청동함은향완"(국보 제75호)을 비롯해 사명대사와 관련된 여러유물이 전시되어 있다.

 

유교문화 유적지와 명승지가 많은 곳 밀양, 임진왜란때 승병장이 였던 사명대사는 이곳 밀양출신으로 그의 흔적이 곳곳에 남아 있다.

올해는 밀양(무안)에서 태어난 사명대사가 입적한지 400주년이 되는 해란다. 

햇살 좋은날 사명대사의 흔적이 남아 있는 무안을 찾아가야겠다는 생각을 해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