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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이야기.../인천광역시

한국 성공회 최초의 교회 '성 미카엘 성당'(내동 성공회성당)

by 산수유. 2010. 4. 27.

 

성공회가 천주교의 일부라는 정도로만 알고 있었던 나는 이번 인천투어를 통해  좀 더 자세히 성공회를 알 수 있는 계기가 될 수 있었다.

한때 주일학교 여름성경학교 준비를 할 때면  성공회부산교구를 빌려 행사준비를 하곤했었다.  특정지역의 지구별 모임으로 모여했기에

마땅한 장소가 없었던건지 한동안 해마다 성공회 건물을 빌려 행사를 치뤘던 기억이 있다. 그로인해 성공회가 천주교의 일부라는 정도만

알고 있었던... 뭐, 더 안다고 딱히 써 먹을 곳이 있는 것은 아니지만 그래도....

 

개항이 되자 기독교 선교사들이 인천을 국내선교의 거점지역으로 인식하고 활동을 넓혀 나갔다는 이야기를 내리교회를 통해  이야기했었다.

그렇듯 천주교와 기독교 같은 외래종교를 위한 선교사들이 이 땅에 들어오게 되는데 그 중 성공회도 예외가 아니었다.  성공회는 천주교에서

갈라져 나온 영국 국교로서 예수에 대한 믿음이라는 것에서는 천주교나 기독교 같이 그 맥락이 같다. 의식은 천주교와 같고, 정신은 기독교와 같단다.

 

생각보다 성공회에 대해 사람들은 잘 알지 못한다거나 알더라도 잘못알고 있는 부분들이 있다고 한다. 그 중 한예로 헨리 8세가 정실부인을 버리고

다른 여자와 결혼하기 위해 천주교에 등을 돌리고 새로 만든종교라고 이야기 한단다. 하지만 사실은 아들이 없는 헨리 8세의 영국을 정치적으로

지배하려는 로마 교황청과의 권력투쟁 때문이였으며, 성공회는 로마의 천주교가 들어오기 이전부터 원래 영국에 있었던 성요셉이 세운 켈트교회

형태로 되돌아간 것 뿐이란다.

 

천주교와 다른점 중 천주교는 신부가 결혼을 못하지만 성공회는 신부가 결혼을 할 수 있으며, 수도에 전념하는 수사나 수녀는 천주교와 마찬가지로

결혼을 하지 못한다고 한다.

 

또한 천주교는 로마교황청에 의해 수직적으로 명령을 받는 것과 달리 성공회는 그나라 사정에 맞춰 재량을 주어  토착화에 주력한다. 그래서

선교사가 파견되면 교회건립부터 하려는 천주교나 기독교와는 달리 성공회는 토착종교를 인정하고 교육사업과 의료사업을 펼친단다.

 

 

인천시 중구 내동에 있는 ' 인천 성 미카엘 성당' 즉 '성공회 내동성당'이 있는 자유공원을  개항초기에는 '약대이산'이라 불렀는데

이는 '약대인산'을 잘못 발음한 것으로, 그  당시 우리나라 사람들은 서양의사를 '약대인'이라 불렀다고 한다.

 

 

'약대인'의 뜻은  '서양 약을 가지고 치료하는 어르신'이란 뜻으로 그 약대인은 미국 펜실베니아 출신의  엘리 바 랜디스(Eli Barr Landis,

한국명 남득시) 선교사이다. 그는 펜실베니아 의과대학에서 박사학위를 받은 의료선교사였다.  랜디스선교사는 영국퇴역 의무관 출신인 와일스와

간호교육을 받은 2명의 수녀등 선교동역자 6명과 우리나라에 들어왔다. 

그는 1891년 4월 20일 인천내동교회 옆에 진료소를 설치하여 이름을 ‘성 누가병원’이라 짓고 진료를 시작하는데 이것이 인천 최초의 서구식병원이다.

 

이렇게 설치된 진료소는 많은사람들에게 희망의 진료소가 되고 기쁨을 주게된다. 그러나 환자를 돌보던  랜디스 선교사는 정작 본인의 몸을

챙기지 못해 과로로 쓰러지게 되면서 조선선교를 꿈꾸며 쏟았던 그의 열정은 1898년 4월 14일에 끝이 나는데  그의 나이 겨우 32세 였단다.

 

   

한국 성공회 최초의 교회인 '성 미카엘성당'은 한국전쟁 때 폭격으로 폐허가 되고, 1952년 관할사제로 부임한 전세창 신부가  1956년 지금의

 

성당을 완성했다고 한다.  

 

   

 

성공회는 토착종교를 인정한다는 실천의 예를 볼 수 있는 부분이 있었다.  

한국 교회 건축양식으로는 유일하게 바실리카 양식을 따른 건물이면서도 한국고유의 맞배지붕을 본따 기와를 얹고 한국의 전통을 살려 처마를 마감하여 창호및 벽체부분을 섬세하게 처리해서 동서양의 아름다움을 잘 조화했다.

 

특히 관심있게 볼 것은 연꽃 문양의 십자가를 볼 수 있는데 강화도의 성당이 절처럼 꾸며져 있는 것 처럼(강화도에 있는 성당을 가 보지는 못했지만

그렇게 지어 졌다고 한다.)  연꽃 문양을 성당에 새긴 이유는 예나 지금이나 우리나라 사람들이 많이 믿는 불교를 포용 한다는 자세에서 만든어 넣은 것이란다.

성공회 내동성당은 시 무형문화재 제51호로 지정되어있다.

    

   

'성 누가병원' 기념비

환자를 돌보며 정작 본인은 과로로 쓰러져 32세의 젊은 나이에 세상을 떠난 랜디스선교사의 조선사랑을 생각하며 우리는 잠시 묵념을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