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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이야기.../인천광역시

우리나라 최초의 예배당, 인천 내리교회를 잠시 찾았다.

by 산수유. 2010. 4. 26.

  

   

인천은  개항이후 기독교 선교사들이 속속 입국하게 되면서 자연적으로 기독교의 관문이 된다.
우리나라 사람들은 선교와 서구식교육 그리고 의료지원을 선교사들로 부터 받으면서  의식에 큰 변화을 가져오게 되고
이를 계기로 구한말 당시부터 외국인 선교사들은 인천 국내선교 '거점지역'으로 인식하고 활동을 넓혀 나간다.
 
기독교를 전파한 선교사들은 대부분 인천에서부터 활동을 시작하여 전국으로 퍼져나가게 되는데 이는 인천을 한국기독교 역사의
주춧돌로 삼은 것이라고 볼 수 있다.
 
1883년 새롭게 축조된 인천항이 개항되고, 1885년 4월 미국 북 감리교회 아펜젤러 목사부부와  북 장로교회목사는 인천항을 통해 우리나라에
첫발을 내딛게 된다. 선교를 목적으로 입국한 이 세사람은 화교들이 집단으로 거주하는 지역에서 작은 초가집을 빌려 머물게 되는데
이 초가집이 내리교회의 모태가 되는 것이다.
 아펜젤러 목사부부는 미리 배편으로 부쳤던 오르간이 도착하자,  머물고 있는 초가집에서 오르간에 맞추어 찬송을 부르며
 예배를 드리게 되는데,  이것이 국내 최초 감리교 공식예배 되는 역사적인 순간이 된다.
 

그후 아펜젤러목사(1885-1890)는 서울레 올라 갈때까지 제물포에 머물면서 내리교회를 세우게되는데

이것이 한국최초의 예배당인 것이다.

 

 

기독교 대한감리회 인천내리교회

인천광역시 중구 동인천동 29번지 ☎032-762-7771

 

 좌로부터 아펜젤러목사,  조원시목사,  김기범목사(한국 최초의 목사이다.)의 흉상.

 

내리교회 뿐 아니라,  기독교에 있어서  중요한 세 분의 흉상이 본당입구가 바라 보이는 정원에 세워져 있다.

 

초창기에 큰 성장을 가져 온 내리교회는 1890년 노병일씨가 9칸의 교회당을 한국최초로 자력으로 건축한다.  

특히 1892년 3월 12일에는 한국 최초의 고등학교인 영화학원을 설립하고, 1899년 12월12일에는 감리교 신학대학의 전신인 신학회를 조직개강하여

훌륭한 지도자를 많이 배출하기도 하는데 1901년 12월 22일 제3차 성전이 봉헌되나 이성전은 1964년 2월 26일에 원인모를 화제로  전소되어

1966년 6월 16일에 불타버린 교회 보다 더 웅장하고 아름다운 교회가 개축 봉헌된다.

그리고 1985년에 100주년 기념성전을 봉헌하여 제5성전 시대의 문을 열고 선교의 사명을 계속 이어나가고 있다.

 

 내리교회 한국선교 120주년 기념비

  

 미주 한인선교 100주년기념비

 

 

개항120년의 흔적이 고스란히 남아있는 인천, 그것도 내리교회가 위치한 이 중구지역은 우리나라 최초인 것들이 다양한 곳이기도 하다.

인천은 구한말부터 개항후 지리적 여건으로 기독교의 관문으로서의  역할을 톡톡히 해내며 특히 우리나라 종교에 큰 영향을 미치게 했다.

급기야 우리나라 최초의 감리교회인 내리교회가 있게됨도 그런 환경적 요인이 우선 깔려 있음이 아닐까 한다.

 

내리교회에서 내려가는 언덕.., 예나 지금이나 변함이 없다.

 

'인천'으로 '통'하였느냐 ?

모든 길은 '인천'으로 '통'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