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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이야기.../충청도

[충남-부여]다시만나는 백제, 백제역사문화관

by 산수유. 2010. 6. 1.

 

 

백제문화역사관백제의 역사와 문화를 한 눈에 보여 주는 상설전시실을 비롯하여

어린이체험실, 금동대향로 극장, 정보자료실 등 다양한 전시교육시설을 갖추고 있었다.

 

 

백제는 부여계 이주민들이 한강 유역에 세운 백제국이 점차 마한 지역을 통합하면서 성장한 나라이다.
그 후 도읍을 웅진(熊津, 지금의 공주), 사비(泗比, 지금의 부여)로 옮기면서 독특한 문화를 꽃피웠다.

 

  

 

1층에서는 백제문화의 정수를 형상화한 부조벽화를 비롯하여 백제역사를 시대별로 재현한 1전시실과

백제의 생활상을 재현한 2전시실 및 백제의 사상과 예술혼의 결정체인 금동대향로를 영상극장에서 볼 수있다.

 

 

백제역사문화관은 백제 역사와 문화의 전반에 대한 자료수집, 보존, 연구, 정보제공 등의 기능을 수행하고 출토유물 전시위주에서 탈피하고

첨단 영상기법 및 전시매체를 활용 하여 그 동안 단편적으로 알려져 온 백제에 대한 정확한 지식을 갖게 하는 교육의 장으로서의 역할과

백제사를 다루는 종합적이고 전문적인 박물관으로서 명실공히 백제문화의 메카로서 자리 매김 함을 목적으로 하고 있었다.

 

 

 1층 전시실에는  백제역사를 한성시대- 웅진시대- 사비시대- 백제부흥운동으로 나누어 전시하고 있었다.

 

  

백제의 시조 온조왕이 기원전 18년에 오늘날의 서울 지역에 도읍을 정하여 백제를 건국하며,

이후 웅진(공주)으로 천도한 475년(개로왕(蓋鹵王) 21년)까지를 한성시대라고 한다.

 

 

 

웅진시대는 찬란하고 독창적인 문화를 꽃피운 시대로 고구려 장수왕의 공격으로 한성이 함락되자 백제는 웅진성(공주)으로 천도하여

국가를 재건하고자 하였다. 동성왕과 무령왕은 고구려의 군사적 압력을 이겨내고, 국력을 성장시키고자 노력하였다.

결국 동성왕ㆍ무령왕의 노력으로 백제는 다시 강대국이 되었으며, 이러한 토대 위에서 성왕은 백제 중흥을 위해 사비로 도읍을 옮기게 된다.

 

그러나 역사의 뒤안길로 접어든 사비시대..

 

 

2전시실은 백제의 성곽, 백제의 생활, 사비도성등 백제의 삶과 문화를 보여준다.

 

 

백제의 생활문화공간을 소개하는 공간

 

  

 

 

  

백제에서는 중요한 국사를 논할때 왕과 귀족이 남당에 모여서 회의를 하였고,  관리들은 색복제도에 따라 관등별로 공복의 색깔을 달리 하였다.

 

 

금동대향로극장에서는 금동대향로에 대해 자세히 설명하고 있다.

지금까지 백제시대 발굴사업의 최대 성과로 손꼽히는 금동대향로는 높이 64Cm, 무게 11.8Kg이나 되는 대형 향로로

백제시대의 금속공예와 미술문화, 종교와 사상까지도 엿볼 수 있는 중요한 유물이다.

 

  

 

기원 전후 무렵 백제인들은 땅을 파고 바로 시신을 안치하거나 나무나 돌로 널을 짜는 널무덤을 사용하였다.
한성시대의 백제인들은 시신을 두고 그 둘레에 돌을 쌓아올린 돌무지무덤과, 널길이 달린 돌방 위에 흙을 덮은 굴식돌방무덤 사용하였다.

돌무지무덤은 고구려의 무덤 양식과 같은 것으로 당시 두 나라가 비슷한 문화를 공유하였음을 잘 보여주고 있다.

웅진시대가 되면 돌무지무덤은 사라지고 돌방무덤이 주로 사용되며, 중국의 영향으로 벽돌무덤이 만들어지기도한다.

사비시대에는 평면의 형태가 장방형인 돌방무덤이 유행한다. 한편 전남지역에서는 독무덤이 오랫동안 사용되기도 하였다.

  

 

 

 

백제인들의 미륵신앙은 석가모니불의 뒤를 이은 미륵불이 56억7천만 년 뒤에 나타나 자신을 구제해 줄 것이라는 미륵하생신앙에 가까웠다.

미륵신앙은 이 세상이 깨끗하고 아름다워지기를 바라는 백제인의 염원이며, 미륵불국토는

미륵의 대승설법이 이루어지는 복지사회에의 염원에서 나온 불교적 이상사회관이다. 

 

  

  백제의 불상들은 둥글고 풍만한 얼굴에 가녀린 눈매와 입가에는 온화하고 자비스러운 ‘백제의 미소가’ 살아 있다.

이러한 백제의 불상들을 자신의 미소와 영상화면으로 비교해 보며, 비교된 모습을 사진으로 출력할 수 있다

 

 

고구려, 백제, 신라 삼국은 서로 영향을 주고받으면서 발전하였다. 고구려는 삼국 중 가장 먼저 건국되어 백제, 신라, 일본문화에 영향을 주었다.

고구려 문화는 호방한 북방 초원 문화의 영향을 받아, 강하고 용맹스러운 고구려인의 기상을 잘 보여준다.

백제는 초기에 고구려의 영향을 받았으나 이후 바닷길(海路)을 통해 중국 남조의 문화를 수용하여 우아하고 세련된 문화를 만들었다.

신라는 고구려와 백제의 문화를 폭넓게 수용하는데, 특히 불교의 영향으로 화려하면서도 엄격하며 추상적인 성격을 띠게 된다.

 

 

함께투어에 참여한 여인.. 흔쾌히 허락한 한 컷.. 주변분위기와 잘 어울린다.

 

 

고구려의 영향을 받았던 백제는 그 후 중국과의 교류를 통해 독창적이고 창조적으로 발전시켜 백제만의 문화를 만들었다.
이 후 신라와 일본 문화에 많은 영향을 미치게 되며, 역사적 고증을 통해 증명되고 있다.
백제의 탑 양식을 통해 또 다른 새로운 역사의 사실을 알아 볼 수 있다.

 

찬란한 백제역사문화의 감동과 교훈을 느낄 수 있는 소중한  백제역사문화관이 되기를...

 

 

 

충남 부여군 규암면 합정리 575  041-830-346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