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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이야기.../충청도

[충남-부여]부여정림사지를 돌아보며..

by 산수유. 2010. 5. 27.

 

 

부여 정림사지는 백제가 사비로 도읍을 옮긴 직후 세운 절터로 사적 제301호로 지정되어 있다.

백제시대의 전형적인 1탑 1금당식 가람이나 백제시대 절 이름은 알 수 없으며 1028년에 만든 기와에 「定林寺」라는 명문이 있어

고려시대의 절 이름이 '정림사'인것으로 밝혀졌다. 남북 직선상에 중문, 탑, 금당, 강당을 배치하고 주위를 회랑으로 둘러친 형태이다.

가람 중심부를 둘러싼 회랑의 형태가 북쪽에서 간격이 넓어진 사다리꼴이 라는 점, 그리고

남쪽에 2개의 사각형 연못과 남문터가 있는점등이 배치의 특징이다.

 

 

국보 제9호의 정림사지 5층석탑은 백제가 부여로 도읍을 옮긴 후 6세기 말에 세워진 석탑으로 현존하는 석탑 중 1,500년을 지켜 온

 가장 오래된 탑으로 백제의 표석처럼 서있다. 목조탑에서 석탑으로 넘어가는 첫  양식으로써 비례와 구조 수법이 뛰어나며,

부드럽고 온화한 백제문화 이미지가  그대로 녹아 있음을 느낄 수 있다.

탑의 모서리에 세운 배흘림 기둥이나 넓은 지붕돌 등을 따로 만들어 짠 탑으로 부분재료를 보면 목조 건축의 구조를 모방한 것으로 보인다.

익산 미륵사지 석탑과 함께 백제시대 석탑의 특징을 잘 보여주며, 백제탑의 시원양식으로 이를 본뜬 탑이 충남지역에 많이 만들어졌다.

1층 몸체돌에는 당나라 장수 소정방이 백제를 멸망시킨 다음 그 공적을 새겨 넣었는데 그 내용이 "백제를 정벌한 기념탑'이라했다고...해서

한때는 '평제탑'이란 이름으로 불러지는 수모를 겪었다고 한다.

 

당나라 소정방이 백제를 멸망시킨 후 새겨놓은 글씨들...

 

 

 

탑을 가만히 보면 불에 탄듯 까만부분들이 보인다. 이 흔적은 실제로 백제가 멸망할 당시(서기660) 나.당연합군에 의해

부여가 일주일간 불길에 휩싸인 기록이 있다고 한다. 참...

 

  

  

 

 정림사지 안에 있는 부여 정림사지석불좌상(보물 제108호)

지금의 머리와 보관은 후대에 만들어 얹은 것으로 보인다. 신체는 극심한 파괴와 마멸로 형체만 겨우 남아 있어

 세부적인 양식과 수법을 알아보기 어렵지만, 어깨가 밋밋하게 내려와 왜소한 몸집을 보여준다.

좁아진 어깨와 가슴으로 올라간 왼손의 표현으로 보아 왼손 검지 손가락을 오른손으로 감싸쥔 비로자나불을 형상화한 것으로 추정된다. 
 

정림사지 오층석탑 앞의 연못에 연꽃이 피어나 듯, 사라진 정림사가 복원되기 시작했다.

지난 상처를 뒤로하고 새롭게 태어날 정림사를 기대해 본다.